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가츠마 아키라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960년 6월 14일 도쿄에서 태어났다. [[게이오기주쿠대학]] 법학부를 졸업한 이후 [[NEC]]에 입사해 영업직으로 근무하다가 [[닛케이]] 비즈니스 기자가 되어 기자로 활동했다. [[1992년]] 헤이세이 유신회[* [[맥킨지 앤 컴퍼니]] 일본지사장인 오마에 겐이치가 창당하였으며, 맥킨지의 부하직원이었던 [[모테기 도시미쓰]]가 당시 정당 사무국장을 맡았다.]라는 정당에 입당해 [[1995년]] 제17회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. 이후 [[신당 사키가케]]에 입당했고, [[민주당(일본 1996년)|구 민주당]] 결성에 참여했다. [[1996년]] [[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[[도쿄도 제10구]]에 출마했으나 자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. 그 후 [[2000년]], 제42회 중의원 선거에서 [[도쿄도 제7구]]에 출마해 당선되었다. 이후 [[2003년]] [[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. [[2005년]] [[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는 자민당 마츠모토 후미아키 후보에게 밀려 지역구인 도쿄 7구에서 낙선했으나 [[석패율제]]로 구제되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. 당선 이후 [[2007년]] 사회보험청의 관리 소홀로 사라진 연금 기록 5000만건을 집요하게 추적했는데, 이때 생긴 별명이 바로 미스터 연금이다. [[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 직전 [[2009년]] [[5월 19일]]에 발족한 민주당의 [[그림자 내각]]에서 연금개혁담당대신으로 내정된 직후 치뤄진 총선에서 자민당 마츠모토 후미아키 후보를 꺾고 도쿄 7구를 탈환했고,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실제로 [[하토야마 유키오 내각]]과 [[간 내각]]에서 [[후생노동성#s-9|후생노동대신]][* 한국으로 치자면 [[보건복지부장관]]으로 당시 부대신이 [[나가하마 히로유키]]였다.]을 역임했다.[* 당시 [[하토야마 유키오 내각]]과 [[간 내각]]의 각료들 중에 의원 선수가 제일 낮았다.] 이후 [[간 제1차 개조내각|간 개조내각]] 출범으로 후생노동대신 직을 퇴임했다. 후임은 [[사이타마현 제3구|사이타마 3구]] 중의원 의원 호소카와 리쓰오. [[2012년]] [[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도 [[민주당(일본 1998년)|자신이 몸담고 있는 당]]이 참패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. 2년 뒤인 [[2014년]] [[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는 [[가이에다 반리|옆 지역구에 출마한 소속 정당의 대표]]마저도 낙선하는 와중에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되었고, 이 선거에서 25개 도쿄 선거구 중 민주당 소속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은 '''나가츠마 본인 말고는 없었다.'''[* 이 선거에선 [[간 나오토]]와 [[가이에다 반리]]도 지역구에서 모두 낙선했다. 이 때는 둘 모두 비례부활하나, [[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|그 다음 선거]]에선 이 둘이 도쿄 비례블럭의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[[안습]]한 상황이 펼쳐졌다. 결국 [[간 나오토]]가 가까스로 비례부활하고 [[가이에다 반리]]는 완전 낙선. 물론 이 와중에도 '''나가츠마는 지역구 사수'''.] 보수표가 유신회와 자민당으로 나뉘는 호재도 있었지만 2위 자민당 마츠모토 후보와 8%p 넘는 격차를 보인 걸 보면 지역구 관리도 잘한 듯. 이후 2015년 1월 민주당 대표선거에 출마해서 [[오카다 가쓰야]] 대표대행, [[호소노 고시]] 前 간사장과 대결하였으나, 1차 투표 때 오카다, 호소노에게 밀려 최하위를 기록해 낙선했지만, 오카다 가쓰야 신대표가 [[렌호(정치인)|무라타 렌호]] 참의원 의원과 같이 나가츠마를 공동 대표대행으로 임명했고, 민진당 창당 이후에도 공동 대표대행을 역임했다. 그 이후 [[마에하라 세이지]] 집행부에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. [[2017년]] [[에다노 유키오]]가 이끄는 리버럴계 신당 창당 작업에 [[간 나오토]], [[아카마츠 히로타카]], [[곤도 쇼이치]], [[쓰지모토 기요미]]와 함께 참가해 [[입헌민주당(2017년)|입헌민주당]]을 창당했고, 이후 [[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|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 7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되었다. [[2021년]] [[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도 지역구 도쿄 7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되었다. 특히 세대교체론이 강하게 불어 당의 중진들이 부진하고 있는 와중에도[* 당장 [[도쿄도 제1구|1구]]의 [[가이에다 반리]]는 아예 지역구에서 패배해 석패율 구제로 간신히 살아남았고, [[도쿄도 제18구|18구]]와 [[사이타마현 제5구|사이타마 5구]]의 [[간 나오토]], [[에다노 유키오]]도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접전을 펼치다 겨우 당선되었다.], 개표 초반부터 바로 당선 확실이 떴었다. 이는 본인이 구태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고 성향도 입헌민주당 의원 치고는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 컸다.[* 특히 나가츠마 아키라는 [[희망의 당(2017년)|구 희망의 당]] - [[국민민주당(2018년)|구 국민민주당]] 출신도 아닌 [[입헌민주당(2017년)|구 입헌민주당]]의 창립 멤버라는 것이다!][* 사실 나가츠마 본인이 예전부터 리버럴 인사 중에서도, [[일본국 헌법#s-3.4|헌법 제9조]] 개정 찬성, 긴급사태 조항 신설을 예전부터 주장해왔기 때문에, 이 점이 오히려 [[중도주의|중도]] ~ [[중도우파]]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흡수한 면이 있다. 애초에 이 분은 정계 입문을 '''[[신당 사키가케]]'''로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개헌파라는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.] 이후 [[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|제26회 참의원 선거]]에서 참패한 이후 [[오가와 준야]] 정무조사회장이 현 이즈미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며 정무조사회장 직에서 사퇴하자, [[이즈미 겐타]] 대표가 나가츠마를 후임 정무조사회장으로 지명하면서 정무조사회장 자리에 올랐다.[* 사실 나가츠마 본인은 이미 구 입헌민주당 시절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한 바가 있어서 사실상 재기용이다.] [[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|차기 중의원 의원 총선거]]부터 10증 10감으로 새롭게 신설되는 [[도쿄도 제27구|도쿄 27구]]에 공천되었고, 동시에 27구 지부장으로 임명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